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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철 - 나에게 쓰는 편지 (글쓴날 : 200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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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쓰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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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기다리시면 신해철의 나에게 쓰는 편지가 흘러나옵니다 ♪

 

 

□글쓴날 : 2001년 6월 28일 한글로 www.hangulo.net 한글로 홈페이지

□원본글 : http://www.hangulo.net/mywork/lettertome.html

 


난 잃어버린 나를 만나고 싶어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처음부터 나는 이런 모습이었을까.
갑자기 이런 질문을 던진다.


모두 잠든 후에
나에게 편지를 쓰네
내 마음 깊이 초라한 모습으로
힘없이 서있는 나를 안아주고 싶어

 

정말이지 힘이 없을 때가 많아졌다. 하루종일 무엇인가를 했다고 생각하는데,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한 일이 없을 때가 많아졌다. 이제 더 이상 밤에 꿈을 꾸지 않는다. 악몽에 시달리는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그런 꿈마저 없다. 나는 정말 꿈을 잃어버린걸까.

 

난 약해질 때마다 나에게 말을 하지
넌 아직도 너의길을
두려워하고 있니
나의 대답은 이젠 아냐


 

그래, 하지만 나는 아직 건재하다. 처음에는 좀 두려웠다. 하지만 이젠 안다.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을 멋지게 걸어야만 내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을 것을. 나는 나와의 도박을 하고 있는 셈이다. 아직 앞은 깜깜하지만, 손에 촛불을 들지 않았지만, 아직은 조금의 공포도 없다. 단지 조금 지쳤을 뿐이니까.

 

언제부턴가 세상은 점점
빨리 변해만 가네
나의 마음은 조급해지지만
우리가 찾는 소중함 들은
항상 변하지 않아
가까운 곳에서 우릴 기다릴뿐

 

 

정말이다. 소중한 것들은 아직도 우리를 기다린다. 판도라 상자의 밑바닥에 있던 희망이란 것처럼. 왜 빨리 나타나지 않을까 조급해 지는 것은 아직도 내 그릇의 바닥이 너무 얇기 때문일 것이다. 빨리 달구어지면, 빨리 식는 법. 가마솥의 모습을 찾아야 한다.


때로는 내마음을 남에겐 감춰왔지
난 슬플 땐 그냥 맘껏 소리내 울고싶어
나는 조금도 강하진 않아

 

 

가끔씩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하지만 남들 앞에서는 여간해서 약한 모습을 보이지는 않는다. 나는 강하다는 것을 심어주어야 하고, 언제나 남을 제압해야만 대화가 된다고 생각한다. 슬픈 영화를 보더라도 울지 못한다. 가슴이 찢어지더라도, 그저 허허 하고 만다. 하지만, 나도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고 싶다. 나를 감싸고 있는 이 두꺼운 가죽을 벗어 버리고 싶다. 강하기는 무슨, 말도 안되는...

이제 나의 친구들은 더 이상 우리가 사랑했던
영화속의 주인공들을 이야기 하지 않는다.
고호의 불꽃 같은 삶도 니체의 상처잎은 분노도
스스로의 현실엔 더 이상 도움될 것이 없다 말한다.
전망좋은 직장과 가족안에서의 안정과
은행구좌의 잔고 액수가 모든 가치의 척도인가
돈 큰집 빠른차 여자 명성 사회적 지위
그런 것들에 과연 우리의 행복이 있을까.

 

 

하지만, 나는 아직도 '금전'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최소한의 금전만은 있어야 '불행하지 않은' 생활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물론, 곧 이런 믿음도 사라질 것이겠지만, 행복이란 돈이 없어도, 돈이 많아도 얻기 힘든 것일지도 모르겠다. 현대 사회에서는 말이다.

 

 

나만 혼자 뒤떨어져
다른 곳으로 가는 걸까
가끔씩은 불안한 맘도 없진 않지만
걱정스런 눈빛으로
날 바라보는 친구여
우린 결국 같은 곳으로
가고 있는데
 

 

 

친구여, 나를 그런 측은한 눈으로 바라보지 마라. 그렇게 이상한 놈 취급하지도 말아라. 큰 길로 잘 달려나가다가 샛길로 잘못 빠져들었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나는 아직도 큰 길을 가고 있단다. 네가 보기에는 작은 길이고, 포장조차 안된 길일지는 모르지만, 저 앞 쪽 끝에서 너와 나의 길은 하나가 될 것이니 말이다. 산 정상을 오르는 등산로는 너무나 많지만, 결국 오르면 한 지점에서 만나듯이, 너와 나는 분명히 저 앞에서 만날 것이다.

 

 

☞ '서른 즈음에'를 매일 듣다보니, 누군가 '애국가' 처럼 듣는다고 했다. 정말 그랬다. 일의 시작과 끝을 늘 서른 즈음에로 장식하고 있었으니. 차분한 것은 좋지만 어딘지 모르게 기분이 우울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 기분 자체를 즐기려고 노력했지만... 몇몇의 사람이 '애국가'를 바꿔보라고 권했다. 그래서 찾은 것이 '나에게 쓰는 편지'다. 참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노래같다.

 

처음 이 노래를 부를 때, 그렇게 크게 와 닿지는 않았다. 나는 어차피 앞서서 가고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정말 건방진 생각이었다. 그렇다고 요즘에는 뒤떨어졌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저, 남들과 보조를 맞추어 때론 빠르게, 때론 느리게 걸어가고 있을 뿐이라고 믿는다.


 

아, 어느새 밤 8시가 되어 버렸다. 눈을 뜨자마자 샤워를 하고, 대충 옷을 걸치고 나오면 8시 10분이 된다. 회사에 도착하면 8시 45분.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새 12시 10분. 밥을 먹고, 창밖의 산을 한 번 쳐다보고 다시 앉았다가 정신을 차리면, 이렇게 밤 8시가 된다. 배가 고픈가. 아니, 이미 저녁 생각은 저기로 달아나 버렸다. 하지만 회사를 나서면 엄청난 허기가 나를 공격할 것이다.

 

자, 하루를 마무리 해보자. 이렇게 이곳에 끄적거리면서 깜짝 놀란다.

아, 오랫동안 끄적거리지 않았구나. 주절거리기만 하고 끄적거리지 않았구나. 누군가에게 이야기 하고 싶지만, 이야기 할 상대가 마땅치 않았을 때 그렇게 쏟아붓던 끄적거림. 이제는 그런 이야기를 할 의지도 사라진걸까?

 

쓸데없는 생각 집어치우고. 의자에서 일어나 걸어본다. 허리를 펴고, 기지개도 한번 편다. 하늘을 바라보자. 하늘은 늘 거기에 있다.

 

2001년 6월 28일
한글로

hangulo@hanmail.net
www.hangulo.net

 

 

 

이 글들은 오래전부터 제 홈페이지에 공개되던 글을

합법적인 음악과 함께 게시하기 위해서 다음 블로그로 옮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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