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TV를 틀면, 흔히 사채라 불리는 <소액 대출> 광고로 꽉 차있는 듯 하다. 유명한 연예인들을 앞세우고 "친구가 되어준다"는 식의 그 지긋지긋한 대출광고...
그런데, 2002년 8월에 만났던 이 한권의 책은 정말 <친구가 되어주는 대출>을 직접 실행한 사람의 이야기다. 이미 오래전에 책꽂이에 꽂혔던 이 책을 다시 뽑은 이유는, 이 책의 지은이이자 주인공이 바로 올해의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뉴스를 며칠 전에 들었기 때문이다.
2006년의 노벨상은 바로 무하마드 유누스와 그가 세운 소액융자 전문 은행, "그라민(방글라데시어로 '마을'이란 뜻)은행"에게 돌아갔다.
대체 소액 융자란 무엇일까?
책을 다시 잡고서 거침없이 옛날의 기억을 되짚어본다. (약 400쪽이나 되는 두꺼운 책이라 쉽게 다 읽을 수는 없지만.. ^^)
방글라데시에서 자라고 미국에서 경제학 박사를 받았으며, 방글라데시 치타공 대학의 경제학 교수로 있던 1976년. 유누스씨는 충격적인 현실을 발견하게 된다.
당시는 방글라데시가 가장 최악의 상태였다고 하는데, 한 마을 주민이 고리대금업자에게 돈을 빌려서 하루종일 의자등을 만들고 다시 원금을 갚고나면, 손에 쥐는 것은 정말 우리돈으로 "몇원"도 안되는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마을 전체가 그렇게 지고 있는 빚의 총액이 27달러였다는 점이다. 우리가 하루 술값으로 날릴만한 돈이 없어서 그들은 비참하기 짝이없는 생활을 해나가고 있었다.
유누스 교수는, 직접 27달러를 마을 사람들에게 대출해주면서 "소액 융자 (마이크로 크레딧)" 를 시작하게 된다. 그라민 은행이 제대로 설립된 것은 1983년의 일이니 벌써 30년도 넘은 일이다.
이쯤되면, 사실, 그 소액융자라는 것이 별다를 것이 있는지 의심하게 된다. 하지만, 책을 읽는내내 나는 눈시울을 붉힐 수 밖에 없는 많은 사건과 접하게 된다. 단순한 은행이 아니라, 마치 우리의 '새마을 운동'처럼 사람들을 부지런하게 일하게 만드는 운동도 함께 하고 있었다. 아니, 돈을 빌리려면 그런 생활을 하고 있고, 하겠다는 것을 증명해야만 가능했다.
결국 방글라데시 인구의 10%가 넘는 240만가구가 희망과 용기를 가지고 자신들의 운명을 개척하게 만들었다. 그들에게는 어떠한 담보나 보증을 요구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도 놀라운 것은 대출 상환율이 1976년 이후로 90%를 웃돈다는 것이다.
적은 돈이라서 쉽게 갚을 것이라고? 아니다. 우리에겐 적은 돈일지라도 그들에게는 평생 만져보지 못할 큰 몫돈이다. 그런 돈을 조금씩 상환하면서 결국 언젠가는 원금을 갚게 만든 그라민 은행의 독특한 제도는 놀라운 것이다.
물론, 이 은행은 미국, 프랑스 등 선진국에도 그 기술을 전파했고 전세계 60여 개국에서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빌 클린턴이 아칸소 주 지사로 있을때 바로 그 곳에서 그라민 은행이 빈곤 퇴치를 위한 소액 대출 프로그램을 실행했다는 에피소드는 이 방법이 결코 "못사는" 나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해준다. 금액이 조금 커지기는 했지만, 375달러만 있으면 손톱 관리 장비를 하나 들여놓아서 더 나아질 수 있는 피부관리사, 600달러가 있으면 동네에서 리어카 음식 장사를 하겠단 사람... 이 모두에게 아무런 보증과 담보없이 돈을 빌려주었고, 아직까지도 그런 운동은 계속 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2000년 '신나는 조합'을 시작으로 사회연대은행, 아름다운 재단 등이 마이크로 크레디트를 시행하고 있다. 아직은 걸음마 단계지만 가능성이 보인다. 신나는 조합의 대출금 회수율이 92%에 이르고 사회연대은행을 통해 창업에 성공하는 업체가 매년 크게 늘고 있다는 소식이다. (중앙일보 10월 16일 사설 참고)
그리고, 그라민 주택 융자, 그라민 폰, 그라민 의료시설..등 각종 사회 사업도 진행했으며 아주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 오죽하면, 이번 노벨상 상금 전액을 빈곤층을 위한 식료품 회사와 안과 병원을 짓는데 모두 기증했겠는가.
가난을 퇴치하는 것... 그것은 모든 이의 소망이다. 양극화가 심해지고, 점점 더 소외되는 이웃이 많아지는 지금... 그라민 은행이 생길 당시처럼 고리 대금 업자들은 TV에서 돈을 빌려가라고 손짓하고 있다.
가난을 해결하는 데 종자돈이 될 소중한 자금을, 아주 적은 액수이지만 너무나도 큰 발판이 되어줄 그런 자금을, 나의 얼굴을 보고 빌려주는 그런 은행. 그 은행이 바로 그라민 은행이고, 올해의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그곳이다.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일하고 싶은자에게 작은 도움을 주는 것... 그것이 궁극적인 가난 퇴치의 시작이리라. 혹시, 이 책을 읽고 "그냥 아무에게나 돈빌려주는 것이 무슨 소용이냐"고 말할 사람은 없으리라. 만약 그런 오해를 했다면, 내가 쓴 글에 문제가 있을것이다.
마침, 서울 평화상 수상자로 10월 18일에 한국에 오신다고 한다.
그분의 뉴스가 연일 톱뉴스로 지겹고 지겹게 TV에 나오기를 빈다. 단! 그 프로그램이 나오는 동안 중간 광고에는 '사채광고'는 제발 넣지 마시길!
.한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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